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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와 AI

광기와 우연의 역사 Page 224

19세기가 되어서야 현실 속도가 그 척도와 리듬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변한다. 1800년에서 1820년에 이르는 기간에 세계 민족과 국가들은 지난 수천 년과는 비길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철도와 증기선이 생기면서 전에는 여러 날 걸리던 여행을 단 하루 만에 할 수 있고, 전에는 여러 시간 걸리던 길을 15분이면 갈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철도와 증기선이 가져온 속도의 혁신을 대단한 승리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발명품은 아직도 이해가 가능한 여유 안에 있다. 이러한 운송 수단은 기존의 속도를 다섯 배, 열 배, 혹은 20배 정도로 높인 것이기에 사람들은 시각과 내적 감각을 통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적처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가 이루어 낸 최초의 성과는 세상을 뛰어넘는 파급력을 갖게 된다. 전기는 시작부터 기존의 모든 법칙을 뒤집고 모든 주요한 척도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아기 장수 헤라클레스와 견줄 만하다. 후세에 사는 우리는 전보가 처음 작동했을 때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놀라움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라이덴 병에서 발생한 전기 불꽃은 겨우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1인치 거리밖에 도달하지 못할 만큼 약했는데, 그것이 갑자기 괴물 같은 힘을 얻어서 여러 나라를 건너뛰고 산을 넘어서 온 지구를 돌아다닌다니 넋을 잃고 경탄할 일이 아닌가. 생각을 마무리하고 적어 놓기만 하면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즉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그 글귀를 수신해서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다니. 작은 볼타 전지의 양극 사이를 오가는 보이지 않는 전류를 잡아들여서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읽을 수 있게 되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어제만 해도 물리 실험실 기구로는 유리 막대를 문질러서 겨우 종이 몇 장을 끌어당기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제 그런 장난감 같은 기구로 인간의 근육과 속도의 수백만, 수천만, 수억 배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전류는 요정 아리엘처럼 보이지 않게 공기를 둥둥 떠다니며 소식을 전하고, 철도를 움직이고, 도로와 건물을 환히 밝히게 된다. 이 발명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공간과 시간의 관계는 세계 창조 이후 가장 결정적인 변화를 겪는다.

1837년 전보가 등장하면서 이제껏 분리된 삶을 살았던 인류는 처음으로 같은 시간에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우리 교과서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대다수 교과서 저자는 아직도 어떤 장군이나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한 이야기가 인류와 함께 진정한 승리를 거둔 이야기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837년 시간의 가치가 이렇게 돌변하면서 인간의 심리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근대사에서 이만큼 중요한 연도는 결코 없을 것이다. 암스테르담, 모스크바, 나폴리, 리스본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을 파리에서 같은 시각에 알 수 있게 된 이후 세계는 달라진다. 이제 마지막 한 발짝만 내디디면 지구의 나머지 부분이 이 거대한 연결망에 포함될 것이고, 전 인류가 공통된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LLM 모델의 극초기인 요즘, 이 이야기가 비슷하게 느껴진다. 지금만 해도 많은 작업들이 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처리될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 하던 일에 묶여서 그걸 느끼지 못할 뿐이지, 일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 전부 말도 안 되게 바뀔 것이다.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전부 다 바보같이 느껴지게 될 것이다. "왜 그때는 그렇게 일을 했지?" 스마트하게 개발을 해서 자동화하고 그랬던 작업들조차 "당연한 걸 되게 힘들게 했네" 하고 생각하게 될 거고, 이런 작업조차 단순 작업처럼 느껴질 날이 올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걸 가지고 태어난 세대는, 우리가 전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20대가 인터넷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10대가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그 위에서 자랄 거다.

그럼에도 일상의 끝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 거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걸 잘 감각하고 살고, 그걸 다루는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의 끝에 있는 사람들의 성격은 달라질 거다. 예전에는 제조, 전기, 인터넷을 지배하는 회사와 사람이 각각 시대마다 권력의 끝에 있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을 서비스로 공급하고 인공지능에 필요한 기반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권력의 끝에 있을 것이다.